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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필요악인가 _김익중

여름울 2012. 2. 14. 16:01


《녹색평론》제121호 2011년 11-12월호에 실린 글을 옮겨왔습니다. 


2011년 3월 11일은 인류사에 남을 날이 될 것 같다. 일본의 동북부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지진과 이로 인한 쓰나미가 해안지방을 덮쳐서 1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고, 여기에 더하여 후쿠시마 핵발전소 4개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핵사고에 의해서 사망한 사람은 공식적으로 한명 뿐이지만, 사람들은 쓰나미에 의하여 사망한 1만명보다 더 큰 염려를 하고 있다. 이런 염려가 이성적인지 아니면 무지의 소치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 않다. 적어도 수십만명이 살고 있는 땅이, 앞으로도 수백년 동안 살 수 없을 만큼 오염되었고, 적어도 수천만명의 일본인들이 방사능에 피폭되고 있다. 이들 중 적어도 100만명 이상이 암이나 기형아 출산 등을 경험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후쿠시마에서 2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도쿄에서 기준치의 몇배에 이르는 공간방사능이 측정되고 있으며, 도쿄의 수돗물에도 세슘이 검출되고 있다. 도쿄보다 더 멀리 떨어진 시즈오카(?岡)역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차밭에서는 세슘 오염으로 인하여 찻잎 수확을 포기하였다. 올해 생산될 쌀의 오염은 불을 보듯 확실한 상태여서 일본에서는 작년 쌀 사재기가 성행하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3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도 코피가 나고, 설사하는 어린이 환자가 급증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피난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핵사고에 의한 사후대책 수립과 실행으로 십여년 이상을 소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일본의 국운이 이 한번의 사고로 기울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있기 전에도 대규모 핵사고는 있어왔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 핵사고가 발전소 사고로는 처음으로 INES 5등급 이상의 사고로 기록되었다. 그 이전에도 6등급으로 기록된 러시아의 키시팀 등 핵사고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재처리시설이나 실험실 등의 사고였다. 두번째 대규모 발전소 사고는 1986년의 구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이다. 스리마일 핵사고의 전모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보가 더 잘 공개될 것 같은 미국에서의 사고는 철저하게 감추어진 반면에, 철의장막이라고 불리우던 구소련의 핵사고는 잘 알려진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그리고 세번째의 대형사고가 이번 후쿠시마 핵사고라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한번 들여다본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된 내용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1, 2, 3호기에서는 지진으로 인하여 원자로(압력용기)에서 냉각수가 흘러나왔고, 핵연료봉이 공기중에 노출되어 냉각기능이 마비되었다. 이로 인하여 노심(핵연료봉)의 온도가 수천도까지 올라갔고, 냉각수와 핵연료봉 피복제인 지르코늄 사이에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 수소가 발생하였다. 이 수소는 깨진 압력용기의 틈으로 빠져나와서 원자로 건물(격납고 포함) 내부에 고여있다가 폭발하였다. 이른바 수소폭발이다. 이 폭발이 있기 전후에 노심은 완전히 녹아서 핵연료와 핵연료봉이 액체상태로 압력용기 밑바닥에 떨어졌고(멜트다운), 압력용기의 밑바닥을 뚫고 격납용기의 바닥까지 내려왔다(멜트스루). 현재 이 액체상태의 핵연료는 땅을 파고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내려가는 중이다(차이나 신드롬).

한편 후쿠시마발전소 3,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에는 원자로보다 약 5배 이상의 사용후핵연료가 냉각되는 도중이었는데, 이 냉각수가 지진으로 인하여 새나갔고, 이곳에서도 핵연료봉의 멜트다운과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이 사고에 의해서 지구환경으로 흩어지는 중이며, 현재로서는 이 핵반응을 멈출 방도가 없다. 핵반응은 모든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고,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핵반응으로 발생하는 방사능을 최대한 가두어두는 일뿐이다.

그나마 이 ‘방사능 가두기’ 작업도 그리 순조롭지 않아서 원자로를 식히는 작업뿐 아니라  발생한 오염수를 가두는 작업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재 도쿄전력은 오염수의 체적을 줄이는 기술과 오염수를 정화하여 다시 냉각에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고장이 잦아서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양의 오염수는 태평양으로 흘러들고 있고, 원자로 등을 식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체들은 바람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기도 하고, 북극으로 올라갔다가 한반도 쪽으로 내려오기도 하며,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태풍을 타고 한반도 쪽을 향하기도 하여,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땅과 공기를 계속해서 오염시키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기중에서 방사성 세슘과 요오드가 검출되었으며,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목초지와 우유가 입증되기도 하였다. 후쿠시마 발 방사능 오염은 적어도 수년 이상, 아마도 수십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일본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살펴보면 일본 땅의 절반 정도가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다. 후쿠시마에서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도쿄 역시, 전 지역이 오염되어 있다. 오염된 지역의 어린이들은 코피와 설사에 시달리고 있다. 이 증상은 히로시마, 체르노빌 등의 방사능 오염지역에서 이미 보고된 가장 흔한 피폭 증상들이다. 일본인들은 오염된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들에 의해서 앞으로도 수십년 이상 피폭이 될 것이다.

 

핵사고의 확률

과거의 중요한 핵발전소 사고들을 살펴보면 핵사고의 확률을 높이는 요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의 핵사고들은 전술한 바와 같이 스리마일 사고, 체르노빌 사고, 후쿠시마 사고 등이다. 우선 이들 사고를 일으킨 국가들을 살펴본다. 미국, 구소련, 일본 ― 이 세 나라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첫째, 이 세 나라들은 핵발전소 개수가 많은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전세계에 핵발전소가 447개인데, 미국이 104개를 갖고 있고, 구소련은 러시아 32개를 포함하여 (당시에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이 발전소를 갖고 있었다. 세번째가 프랑스 58개, 네번째가 일본 54개이다(참고로 한국은 21개로 일본에 이어서 다섯번째로 많다). 이 세 나라의 다른 공통점은, 원천기술 보유국, 원자로 수출국, 원자력 선진국이라는 점들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왜 핵발전소를 한두개 갖고 있는 불가리아, 멕시코, 슬로베니아, 아르메니아 등의 핵 후진국에서는 대형사고가 안 일어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세계에서 핵발전소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에서만 대형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은, 발전소의 개수가 가장 중요한 핵사고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자동차가 많은 나라에서 교통사고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핵사고의 확률을 계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전세계 447개의 핵발전소 중에서 이번 후쿠시마를 포함하여 6개의 핵발전소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확률은 1.34퍼센트에 해당한다. 정부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이 여태까지 주장했던 ‘100만분의 1’이라는 핵사고 확률은 사실이 아니다. 100만개 발전소 중 하나가 아니고, 약 80개 중 하나에서 핵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1.34퍼센트라는 확률은 그래서 한개의 핵발전소가 있을 때 그곳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할 확률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21개의 핵발전소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어떨까? 수학교과서에 나온 방식으로 계산하면 약 24퍼센트가 나온다. 이것은 말 그대로 한국에서 대형 핵사고가 발생할 확률이다. 물론 한가지 전제가 있다. 과거와 같은 확률로 핵사고가 난다는 전제 말이다.

심하게 말하면, 전쟁도 없이 대한민국이 완전히 망해버릴 확률이 24퍼센트가 되는 것이다.

 

노후한 원전이 더 위험하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노후 원전과 원전의 수명연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수명연장이 된 발전소이고, 이번 사고에서 가장 먼저 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노후한 원전이 과연 더 위험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다. 핵발전소는 거대한 기계이다. 기계는 수명이 있고, 노후한 기계일수록 고장이 잦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론일 뿐이다. 노후한 원전이 더 위험하다는 증거는 무엇일까?

첫째, 후쿠시마 핵사고에서 한가지를 찾을 수 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후쿠시마에는 10개의 핵발전소가 있었다. 그중에서 나이순으로 1, 2, 3, 4호기가 폭발하였다. 같은 지진과 같은 쓰나미를 겪은 10개의 원전에서 우연히 이렇게 나이순으로 폭발할 확률은 너무나 작다. 약 1/5,000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요인이 있는 것이며, 그 요인은 바로 ‘핵발전소의 나이’인 것이다. 후쿠시마 1, 2, 3, 4호기는 모두 30년이 넘은 노후한 원전들이었다. 5, 6호기와 그 이후의 원전들은 모두 30년이 채 안된 것들이다.

둘째, 공학적 증거이다. 일반적으로 원전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원자로(압력용기) 자체라고 알려져 있다. 압력용기는 약 20센티미터에 달하는 두껍고 단단한 금속재로 만든다. 그러나 이 단단한 용기도 고압과 고열 그리고 높은 방사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약해지고, 용기에 손상이 가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용기의 건전성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용기와 동일한 금속편을 원자로 안에 처음부터 넣어둔 후, 한개씩 꺼내서 검사를 하는 것이다. 똑같은 재질의 압력용기도 같은 상태일 것이므로 이렇게 파괴검사를 하여 건전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3년 전 고리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을 심사할 때 이 금속편을 한개 꺼내서 파괴검사를 실시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건전해야 할 금속파편이 파괴되고 말았다. 이 파괴검사는 그간 몇차례 있어왔으나 파괴검사에서 불합격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것은 이른바 ‘경년열화(經年劣化: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발생하는 작은 균열)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렇게 경년열화 현상은 원자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후한 원전이 더 위험하다는 공학적 증거가 되는 것이다.

세번째는 외국의 정책변화가 방증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러시아는 수명연장 대신 신규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는 안전성에 민감해진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채택해야 했던 정책이었다. 당장 핵발전소 숫자를 줄일 수는 없고, 국민들에게 그래도 안전을 도모한다는 확신은 주고 싶었던 러시아정부의 선택이 바로 수명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정부뿐 아니라 국민들까지 노후한 원전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 다른 예도 있다. 17개의 원전을 갖고 있던 독일은 노후한 원전부터 7개를 폐쇄하였다. 나머지 10개도 앞으로 11년 내에 모두 폐쇄하기로 하였는데, 왜 나이순으로 오래된 원전부터 폐쇄했을까? 역시 독일국민들도 노후한 원전의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경년열화 현상, 나이순으로 폭발한 이유, 외국의 정책변화 등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노후한 원전이 더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핵사고의 원인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핵사고의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핵발전소의 개수, 노후한 원전 등이다. 그러나 핵사고의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다. 스리마일 핵사고의 원인은 단순 노무자의 실수였다.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은 과학자들의 무리한 실험이었다.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은 잘 알려진 대로 지진과 쓰나미이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원인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이렇게 짐작할 수 있다. “다음 핵사고의 원인은 이들 세가지말고 다른 원인일 것이다”라고.

핵발전소에 들어가 보면 너무나 많은 부품들이 있는 너무나 거대한 기계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복잡성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것이다. 처음 성공한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인공위성 발사가 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복잡성 때문인 것이다. 작은 실수가 하나만 있어도 인공위성 발사는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 어느 수준 이상의 복잡성을 갖는 기계는 사고나 고장이 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핵발전소에서는 지금도 사상 초유의 사고 유형들이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 고리원전에서의 사고가 그렇다. 바람에 날린 비닐조각이 고압선에 걸리자 원전이 정지한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고는 사상 처음이었다고 발표되었다. 

우리는 수천의 사고 원인 중에서 세장의 카드를 보았을 뿐이다.

 

핵산업계의 진실성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 몇번의 사고가 일어났을까? 한국에는 21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오래된 것은 30년이 넘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640회 이상의 사고 횟수(과기부 산하 원자력안전기술원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그리 적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필자는 이 숫자를 믿지 않는다. 과거에 정부와 한수원이 거짓말한 사례들 때문이다. 정부와 한수원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법에 있는 대로 24시간 내에 국민들에게 고지하지 않고 숨겼던 사례가 많다. 몇가지만 예를 들어본다.

1) 1984년과 88년의 월성 1호기 냉각수 누출사고가 1988년 국정감사 때까지 은폐되었다.
2) 1995년 월성 1호기 방사성물질 누출사고가 1년 뒤에야 보도되었다.  
3) 1996년 영광 2호기 냉각재가 누출되었으나 몇주 후 주변 환경을 오염시킨 뒤에야 알려졌다.
4) 2002년 울진 4호기 증기발생기 관 절단으로 인한 냉각수 누출사고도 단순 누설사고로 축소되었다.
5) 2003년 부안의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후보부지 예비조사 보고서’가 한달간 미공개되었다가 TV 공개토론회에서 지적된 후 공개되었다.
6) 2004년 영광 5호기 방사성물질 누출이 감지되었으나 재가동을 강행했고 일주일간 은폐했다.
7) 2007년 대전 원자력연구소의 핵물질 3킬로그램이 들어있는 우라늄 시료박스가 소각장으로 유출된 사건이 3개월이나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지만 분실된 우라늄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8) 2005년 경주 핵폐기장 주민투표 당시 부지조사 보고서는 4년간 은폐했다.
9) 2007년 12월 고리 1호기 수명연장 허가 당시 안전조사 보고서는 공개를 거부하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자 2011년 공개하였으나 그나마 복사, 사진촬영, 필사 등을 금지하고 직접 와서 보는 것만을 허용하였다. 참고로 이 보고서는 5,000페이지가 넘는다.

이런 은폐사건들을 고려해보면 640여회이라는 사고 횟수가 성공적으로 은폐한 사고들을 제외한 숫자임을 알 수 있다. 핵산업계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진실을 감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번 사건에서 보도된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일본정부는 멜트다운 사실을 석달이나 지난 시점에야 인정하는 등, 수많은 거짓말들을 세계인 앞에서 해왔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거짓말은 현재진행형이며 그중에서 가장 꾸준하고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거짓말이, 이른바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라는 것이다.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

‘기준치’는 의학적 근거가 있는가? 방사선 관련 의학지식이 부족한 필자로서는 처음에는 방사능 기준치가 의학적 판단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핵사고 이후 온갖 매체어서 흘러나오는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라는 표현을 100회 이상 들은 후에야 점차 의혹이 생겨났다. 우선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의학자나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히 의학적 판단인데도 공학자들이 이 말을 하는 이유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왜 이런 핵공학자들의 월권행위가 매일같이 각종 매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필자는 방사능에 의한 인체 피해와 관련한 전공자들을 찾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입수한 후에는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기준치는 세계 핵산업계의 정점에 있는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핵산업의 합법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설정한 것이며, WHO(세계보건기구)가 이를 인정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1959년에 굴욕적인 조약을 맺음으로써 국제원자력기구의 권위에 굴복했다. 그 이후 세계보건기구는 방사능에 대한 입장 발표를 독립적으로 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이 조약의 파기를 위한 국제연대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방사능 환경 기준치는 핵발전소와 핵실험이 없었다면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은 숫자들인 것이다. 현재 방사능 기준치는 국가마다 다르게 설정되어 있으며, 바로 이 사실이 이 기준치가 결코 의학적 안전기준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피폭에 대한 의학적인 연구는 주로 히로시마원폭 피해자, 나가사키 피해자 그리고 체르노빌 피해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인체를 대상으로 한 의학적 연구의 결과는 다음의 그래프로 요약된다.

위 그래프에서 원점을 지나는 직선으로 나타나는 두개의 선이 이른바 고형암 그래프이다. 이들은 방사능 피폭량이 증가함에 따라서 암 발생률이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것을 표시하고 있다. 그래프에서 약간 곡선의 모양을 이루는 것은 백혈병 그래프이다. 백혈병의 경우에는 직선이 아니라 아래쪽으로 볼록한 그래프가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점선 그래프는 이른바 ‘호르메시스’ 이론을 대변한다. 즉 역치(threshold)가 있어서 이 역치까지는 피폭되더라도 암 발생이 증가하지 않고 역치를 넘어서야 비로소 암 발생이 증가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이 호르메시스 이론은 미국의 핵산업계가 주도하여 막대한 연구자금을 들여서 만들어낸 이론인데, 불행하게도 세계 의학계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세계 의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이론이 인체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세포 수준, 유전자 수준의 연구는 엄청나게 많지만 인체 데이터는 없다.

만일 “허용기준치 이하이므로 인체에 영향이 없다”라는 말이 진실이라면 위 그래프 중에서 점선으로 표시된 역치가 있는 그래프, 즉 호르메시스가 옳아야 하지만, 세계 의학계는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사능 피폭에 의한 인체 영향은 다음과 같이 결론 지을 수 있다. “방사능은 그 피폭량에 비례하여 암을 발생시킨다. 이는 기준치 이하에서도 마찬가지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안전한 방사능은 없다.”

 

핵발전소 꼭 필요한가

이번 사고 이후 경주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상당히 재미있는 것이었다.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설문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전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는 대부분이 필요하다고 대답하였다. 다른 지역 시민들에서도 비슷하게 조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 마음속에서 핵발전소는 ‘필요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에 핵발전소가 꼭 필요할까?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한 몇가지 통계자료를 제시해본다.

1) 2010년 핵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는 한국 전체 전기의 31퍼센트였다. 
2) 2010년 한국 전기의 24퍼센트가 난방용으로 사용되었다. 
3) 전체 전기의 60퍼센트 이상이 산업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산업용 전기는 역누진으로 요금이 부과된다. 
4) 한국에는 총 15개의 양수발전기가 있다. 전기가 남아도는 새벽 시간에는 과부하를 막기 위해 전기를 버려야 하는데, 이때 양수발전기가 사용된다. 큰 저수지의 물을 산꼭대기에 있는 저수지로 퍼올리면서 전기를 사용하고, 전기가 모자라는 시간대에 이 물을 이용하여 수력발전을 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이 양수발전기에서 작년에 생산한 전기는 핵발전소 1개의 1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핵발전소 5개를 지을 돈으로 만든 양수발전기가 생산한 전기가 이 정도뿐이라면, 양수발전기는 양수기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양수발전기가 필요한 이유는 핵발전소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며, 이는 전세계적으로 공통의 현상이다. 
5) 유럽 국가들의 절반은 핵발전소를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핵발전소를 가진 나라들도 오래전부터 이미 탈핵으로 방향전환을 했다. 프랑스만 예외인 것이다. 
6) 2011년 일사분기, 미국의 핵발전은 전체 전기생산의 11.2퍼센트를 차지하였고, 같은 기간 재생가능 발전은 11.6퍼센트를 차지했다. 이렇게 재생가능 발전이 핵발전보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한 것은 재생가능발전의 원가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7) 미국의 재생가능발전 원가가 2010년 처음으로 핵발전 원가보다 낮아졌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에서는 핵발전 원가가 왜곡되어 있어서 핵발전이 더 싼 것처럼 되어있다.

다음은 핵발전 단가와 재생가능 발전 단가를 비교한 그래프이다. 2010년부터 재생가능 발전 단가가 핵발전 단가보다 낮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핵발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최근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이번 일본의 핵사고가 우리 국민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선전으로 대응하는 한편 핵선진국을 향한 야망은 슬슬 드러내 보인다. 일본이 뒤처지는 동안 핵선진국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것이다. 경주에 핵재처리시설을 유치하겠다는 발상을 언론에 흘리고 있고, 소듐고속증식로 같은 위험천만한 시설을 경북이나 다른 지자체에 ‘원자력클러스터’라는 이름으로 설치하려고 한다. 정부와 한국 핵산업계는 일본의 빈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원자력클러스터의 핵심은 핵재처리시설과 소듐고속증식로이다. 핵재처리는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이다. 일본은 위험하고 값이 비싼 플루토늄을 후쿠시마 3호기를 비롯한 몇개의 원자로에서 핵연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플루토늄은 추출 과정이 위험하고,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여 일본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이 MOX라고 불리우는 ‘수상한 핵연료’를 공급받았다. 왜 일본은 이렇게 위험하고 5배나 비싼 핵연료를 사용하고 있을까? 또한 쓸 곳도 마땅하지 않은 플루토늄을 왜 그렇게도 많이 생산해두었을까? 일본이 현재 갖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약 30톤 정도 되는 것으로 일본정부가 발표하였다. 이는 핵무기 3,000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이런 일본의 플루토늄 비축은 절대로 경제적인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플루토늄은 우라늄보다 훨씬 비싼 원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라늄보다 더 안전하지도 않다. MOX라고 불리우는 이 핵연료는 훨씬 더 위험한 핵연료라는 것이 정설이다(이번 후쿠시마 사고 때도 3호기의 폭발이 1호기보다 더 위력적이었던 것도 이 핵연료가 플루토늄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한국은 아마도 일본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핵재처리를 통하여 다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해야 가능한 어떤 야망 말이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경주에 핵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오기로 결정된 것은 주민투표를 통해서였다. 2005년 주민투표에서 90퍼센트에 육박하는 찬성표를 얻은 경주로 결정되었다. 이 투표 과정에서의 불법, 탈법 행위들에 대한 많은 기록과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불법이 있었으나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하였다. 투표 이전에 실시한 부지조사 결과는 4년간 비밀에 부쳐졌고, 2009년 공사기간 연장을 발표한 후에야 처음 공개되었는데, 매우 불량한 부지라고 조사되었음이 드러났다. 공사현장에서는 하루에 5,000톤이 넘는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고, 물과 연약한 지반으로 인하여 공사기간은 또다시 연기될 공산이 크다. 공사를 완수하기도 어렵지만 완공된 후에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방사능 누출사고이다.

경주의 중저준위 방폐장은 지하수로 인하여 결국 물에 잠기며, 사일로라고 불리는 창고에는 물이 들어갈 것이며, 이 물을 통하여 방사능 물질은 사일로 밖으로 이동하게 된다. 또한 이 사일로는 보수공사가 불가능하므로 일단 방사능이 누출되면 방사능이 전부 누출될 때까지 진행된다. 다시 말해서 경주 방폐장은 전량의 방사능이 유출될 것이 확실한 상태이다. 이 사실은 필자가 원자력안전기술원에 직접 질문하여 받은 답변서에서도 확인이 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부나 방폐물관리공단 그리고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입장은 “안전하다”이다. 그 논리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사일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더라도 이 방사능이 동해바다로 흘러서 막대한 양의 바닷물에 희석되므로 이 바다에서 생산된 식품을 통하여 우리 국민이 피폭되는 방사능의 양은 기준치 이하가 된다. 그러므로 안전하다.”

 

핵폐기물, 영원한 숙제

중저준위 방폐장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 한 상기한 대로 결론이 날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고준위 폐기물이다. 고준위 핵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는 동일한 의미이다. 현재 21개의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핵폐기물들은 각각의 원전부지에 임시로 저장되어 있다. 이 임시저장소가 포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므로 정부는 조속히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고준위 폐기물의 처리방법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영원히 안전하게 묻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재처리를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재처리를 하더라도 고준위 폐기물의 양은 줄지 않는다. 재처리란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과정일 뿐, 다른 원소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현재 세계에 이 고준위 폐기장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사례는 없다. 아직 고준위 폐기장을 만들 기술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숙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세계가 궁금해하고 있다.

핵폐기물 중 가장 덩치가 큰 것은 역시 운전이 끝난 핵발전소 자체일 것이다. 핵발전소가 수명을 다한 후 폐쇄하는 방법도 두가지이다. 하나는 단순한 폐쇄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한 폐로이다. 현재 폐쇄된 핵발전소는 상당수 있다. 그냥 핵발전소 문을 닫는 것에 그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냥 방치하는 것은 중저준위 방폐물(핵발전소 건물)을 그냥 노상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대로 처리하는 방식은 폐로인데, 아직 세계적으로 완전하게 폐로한 경험도 없다. 기술도 없다. 그것을 할 돈도 없고, 그것에 투자할 의지를 가진 정부도 없다. 그래서 핵발전소는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비유되는 것이다.

현재 핵발전의 원가에 포함되지 않고 있는 원전 폐로비용과 핵폐기물 처리비용은 다음 세대가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것이다. 다음 세대의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비용은 점점더 늘어나고 있다. 현재 경주를 비롯한 4군데의 핵발전소 부지에는 7기의 핵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벌써부터 수명연장이 된 상태로 건설된다. 예를 들어서 신고리 1,2호기는 수명이 60년으로 정해져 있다. 핵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나 다다음 세대가 부담해야 할 세금부담을 어찌할 것인지, 또한 그 사이 대형사고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걱정되는 것이다.

김익중 ― 경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동국의대 미생물학과 교수. 이 글은 이화여대 여성신학연구소 주최 원자력 심포지엄 강연(2011. 9. 27.)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원본출처:《녹색평론》제121호 2011년 11-12월호 / 녹색평론 홈페이지